나무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습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습니다.
내 집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습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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