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9.03.09 08:00
두 무덤은 고려 왕릉처럼 산 중턱에 3, 4층 단을 축조한 뒤 병풍석, 난간석을 봉분에 두르고 망주석, 문석인, 정자각을 세웠다. 하지만 병풍석 등 조각의 정교성이나 장엄한 품격 등이 훨씬 돋보인다. 무덤을 지키는 수호 동물로 말(석마)을 추가했다는 점도 색다르다. 후릉의 경우 고려
공민왕 무덤인 현정릉에서 기본 얼개가 유래됐으나 조선 초 제릉과 건원릉의 새 형식을 반영했으며, 후대 숙종의 명릉, 경종의 의릉 등 17~18세기 왕릉의 양식적 전범이 되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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