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스크랩] 30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후원

해 야! 2007. 3. 17. 10:47
30년 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창덕궁 후원
                                                              작성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장 정종수
...오랜만에 이야기코너에 글을 올리려고 자료를 찾다보니 책장 속에 노랗게 색이 바란 “전망”이란 국가 홍보용 월간잡지를 발견했다. 여기에는 1992년에 내가 썼던「한국의 대표적인 조경유적 秘苑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의 수필이 있어 반복해서 읽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새삼 느끼면서 오늘은 이야기코너 회원들과 함께 창덕궁 후원인 비원을 확대경을 들고 구석구석을 거닐어 보고자 한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이 이궁으로 창건하였으며 창경궁지역을 포함하여 동궁이라 하였다. 후원은 원래 왕과 궁인 등 특정인을 위한 공간이므로 건물지역에서 조그만 문을 통하여 드나들게 되므로 지금처럼 민중적인 기능은 없었다. 그러나 창경궁과 분리 공개 되면서 경계담장이 들어서고 관람동선이 넓혀졌다.

...관람동선을 따라 비원입구에 접어들면 수백 년 된 우람한 느티나무가 수문장 노릇을 하며 우리를 반긴다. 빽빽이 우거진 숲을 지나 언덕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확 트인 공간에 다다르게 되고 여기가 비원의 중요지역인 주합루영역이다. 일원에는 인공 시설물인 부용지, 주합루, 영화당공간이 조성연대는 다르지만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경관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가져다준다. 경관의 이해는 한눈에 보아 조화미 속에서 어떤 감동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본다는 것은 보이는 대상물의 전체적인 조화를 한눈에 직감적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창덕궁을 거닐다가 후원인 비원의 주합루지역에 다다르면 「아~ 좋다」「야~ 아름답다」「역시 세계문화유산이구나」 하며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한다.

...어느 날 지방 전문분야 대학생들의 창덕궁 답사과정을 뒤따르며 들은 적이 있었다. 주합루지역에 접하자 학생들은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했고 설명하는 교수는 계속 학생들에게「좋지? 멋있지? 조선시대 대표적 조경유적이다. 자주 찾아와 공부해」 라는 말이 답사 설명의 전부였다.

...그렇다면 주합루지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눈에 조화를 직감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조화는 어떤 요소들이 혼합되어 아름다운 경관이 조성되었는지를 알고 이해하면 훨씬 많이 그리고 깊이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경치 좋은 산과 들을 나가면 「풍경이 좋다」「경관이 아름답다」라고 말하는데 풍경과 경관의 의미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풍경은 무대장면 또는 시골의 모습처럼 물리적 범위가 제한적인 의미이나, 경관은 모든 사람에게 관찰되어질 수 있는 개방적이고 포괄적 의미라 할 수 있다.

...경관이란 눈에 보여지는 자연 및 인공풍경 모두를 포함하므로 토지, 물, 동식물생태계,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시설이나 활동 그리고 소리, 빛, 냄새(향기) 등 3차원의 요소까지 합한 의미다. 따라서 풍경이나 경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조경이라 하며, 비원지역 전체를 조경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오늘 경관을 좀더 알기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람의 신체와 비교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의 신체 기능은 누구나 같지만 체형이나 성격 등은 각자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다. 따라서 사람은 조화된 아름다운 체형을 가지고 싶어 노력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의상 등으로 치장하여 보완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필요한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었을 때 느끼게 된다. 사람의 신체를 아름답게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비례감은 배꼽을 중심으로 1/1.618 비율이 황금비례라 하여 신체의 균형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키가 175㎝인 사람은 배꼽을 중심으로 상체가 67㎝, 하체가 108㎝를 말하며, 팔을 뻗었을 경우는 배꼽을 중심으로 1:1인 즉, 216㎝가 된다. 벽에 몸을 기대고 혼자서도 자기 신체의 비례감을 체크할 수도 있지만 황금비례는 대부분 서양 사람들의 체형에서 많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서양사람 처럼 다리가 긴 사람을 보면 「잘 빠졌다」「멋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외 자신의 신체나, 의상. 머리. 액스사리 등에서도 균형감, 강조감, 통일감, 친근감, 깊이감, 조화미, 영역감, 대비감 등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가 이루어 졌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흥미롭다.

...조선시대 궁궐의 특징은 다양한 공간감과 소통감속에 아늑한 영역감이 형성되어 있고 시각적 사고 속에서 이러한 공간들을 오가며 거닐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비원지역은 건물지역처럼 획일적으로 영역을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주합루지역, 연경당지역, 옥루천지역 등 큰 영역에서 기능별로 수학(修學)의 공간, 연회(宴會)공간, 휴식공간 등으로 분할되어 자연과 인공이 함께 어울러 지는 형식이다.

...주합루일원은 조성연대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연관성으로 이어져 있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인공으로 조성된 공간이므로 문화적, 생태적, 미적 가치가 뛰어나 인간이 만든 종합예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옛부터 집터를 마련할 때도 음. 양의 원리로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산을 등지고 앞에는 물을 면하는 곳에다 정했다. 주합루지역은 입지적으로 3면이 언덕으로 가려진 위요(圍繞)된 공간에다 제일 낮은 부분에 연못(부용지)을 조성하였다.

...자연적인 산세를 바탕으로 북쪽에 여러 건물과 함께 구성된 주합루는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 조성되었다. 동. 서. 북쪽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남쪽 전면의 경우 석단위에 현재는 없지만 취병(翠屛:살아있는 나무로 만든 울, 「현재는 없음」)이 둘러쳐 있어 연지와 주합루를 분할된 독립영역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분할되고 조성연대가 다르지만 주합루를 조영할 때 기존의 부용지를 중심으로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배치되어 있어 독립성과 통일성이 공존하고 있다.

...부용지의 동쪽은 영화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영화당 앞은 현재는 없지만 춘당대와 연지 그리고 현재 창경궁지역으로 되어 있는 동쪽 관덕정까지 넓게 펼쳐져 연계된 자연경관을 조망하도록 되어있다.



...풍수사상에서 물과 산이 만나는 것은 음과 양의 합치로 만물의 생성을 의미한다. 물은 고여 있어야 성국(盛國)을 이룰 수 있고 흘러가는 물은 흉수(凶水)라 하여 산줄기가 멈추는 곳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부용지는 정방형의 방지(方池)에 원도(圓島) 그리고 남쪽 경계에 부용정(芙蓉亭)이 위치하고 있다. 부용지는 방지(方池)를 땅(양)으로, 원도(圓島)를 하늘(음)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 원리로 조성되어 있다.

...음양사상은 자연의 이치를 통한 자연과학으로 자리매김하여 현대 디자인 기법에서도 음양(○ □)과 함께 삼각(△) 이 어우러지는 조화 이론을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왔다고 할 수 있다. 즉 방지(□)와 섬(○)에 부용정의 팔작지붕인 삼각선(△)은 세가지형(○ □ △)의 대비감에서 오는 조화다. 또 두 다리를 연지에 내디딘 부용정은 인공과 자연의 상호결합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정자는 일반적으로 경치 좋은 곳에 잠시 멈추어 휴식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로 형식이 다양하지만 위치적으로도 연못변이나 섬 그리고 높은 곳에서 멀리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그러나 부용정은 중앙에 위치한 섬과 마주하여 부용지가 양분되는 균형과 대칭의 원리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지만 형태, 선, 크기와 위치, 질감, 색채 등에서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주합루는 부용정과는 축선상에 배치되었지만 양분되는 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는 주합루 전정(前庭)부분의 화계(花階)에 식재된 수목과 영역을 형성하는 취병(翠屛)그리고 부용지의 원도(圓島)의 수목으로 인하여 완화된다. 이는 전통조경의 구성기법 중 인공미와 자연미가 상생적으로 순응한 것으로 본다.

...주합루는 이렇게 입지적 특성과 자연을 적절히 이용한 공간구성에다 구성요소인 식물은 일본과는 달리 인공적으로 억압하여 조형화되지 않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느낄 수 있고, 건조물은 한국건축의 특징인 처마선 등 아름다운 곡선미에 건물의 위치와 높낮이를 다양하게 하여 주변경관과의 조화되게 유지하였다.

...이렇게 주합루지역 뿐만 아니라 후원지역의 대부분은 구성요소들이 다양하고 구성미가 뛰어남을 파악할 수 있으며 지형조건 등의 자연적요소와 당시의 정치체계 등 인문적요소가 상호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주변에 없어진 건물과 담장. 취병을 복원하여 독립성과 통일성이 회복되고, 인공적 관리가 불가피한 식물들은 동궐도를 중심으로 자연식생의 과감한 복구가 필요하다.

...주합루지역 구경을 마치고 영화당에서 자락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면 애련지, 연경당지역과 다시 북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옥류천이 나오고, 서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원래의 들어왔던 돈화문에 접어들게 된다.

...이렇게 창덕궁은 후원은 어디를 가나 똑같은 형태가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 준다. 나무를 인공적으로 모양을 만들지 않았으며, 나무도 사철의 변화가 뚜렷하고 유연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길 또한 지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지세에 따라 폭이나 높낮이의 변화를 주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서양의 기하학적인 조경이 질서와 획일을 강하게 나타내는 시각적인 효과에 치중했다면, 일본의 조경은 아기자기하고 인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연하며 자유로운 사색의 심취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조경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 창덕궁 후원에는 신록이 움트고 꽃향기 그윽하여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 “봄” 녹음이 우거져 각종 새들이 찾아드는 “여름” 열매가 익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낙엽이 떨어져 생명의 자연 섭리를 보여주는 “가을”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이 내리고 적막한 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겨울”로 이어지는 4계절의 변화를 어느 곳 보다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후원을 한바퀴 돌고나면 곳곳마다 배인 독특한 조경미는 정말 신비롭게 느껴진다. 어느 한곳, 건축물 하나 지형에 맞지 않게 배치된 것이 없다. 이러한 후원의 높은 가치평가로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면 많은 관람객의 수용을 위하여 넓혀진 관람로가 우리전통경관에 맞지 않아 조정이 필요하며, 참나무류 등 속성수에 의해 중요 식물들이 생존이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과감한 정리가 요구된다.

 

(출처 : 문화재청) 

출처 : 나무과자
글쓴이 : 순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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