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및 화보

[스크랩] 1950년대 화가 이중섭씨의 제주 생활,,,,,,펌

해 야! 2007. 3. 22. 00:15
[이색 박물관 기행] 슬프고 아름다운 예술 인생이 담긴 서귀포 시립 이중섭 미술관
강지이(thecure8)기자
 
 
서귀포에 가면 슬픈 바다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곳의 경치와는 달리 이곳 제주에는 슬픈 한이 서린 인생과 바다와 바람이 하나가 되어 오는 이들의 마음을 이끈다. 서귀포 앞바다에 띄엄띄엄 놓인 섬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들. 반짝이는 바다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한라산. 이 모든 것이 서귀포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작고 소박한 대상들이다.

이 빛나는 풍경을 사랑하여 제주에 머무르게 된 예술가들도 참 많다. 그들의 삶은 궁핍했지만 그 작품들은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며 후대 사람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감흥을 준다. 머나먼 제주에 유배당한 채 서체 개발에 몰두했던 추사 김정희, 루게릭 병과 싸우며 제주의 풍광을 담은 사진가 김영갑, 6.25 전쟁을 피해 제주까지 내려와 살았던 소의 화가 이중섭.

이중섭은 1951년 6.25 동란을 피해 이곳 제주도 서귀포로 넘어 와 일 년여 기간 동안 아내와 함께 피난 생활을 했다. 그는 여기에서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 등의 작품을 그렸고 그 해 12월 부산으로 옮겨간다. 그가 머물렀던 단칸방은 현재 '이중섭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서귀포 시내에 복원되어 곱게 단장한 미술관과 함께 그의 작품 세계를 알리고 있다.

서귀포 시내에서 이중섭 미술관을 찾기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른 여행지처럼 안내 표지판이 크게 붙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기 저기 물어본 끝에 겨우 찾아간 골목. 표지판을 따라 작은 언덕을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초가집이 보인다. 바로 이중섭이 기거하였던 단칸방이 있는 허름한 초가다.

▲ 이중섭이 기거했다는 초가 - 이 작은 집의 맨 끝 방에 머물렀다
ⓒ2005 강지이
▲ 이중섭이 머무른 방에 대한 안내문
ⓒ2005 강지이
이중섭이 살았던 작은 단칸방은 허물어져가는 흙 담을 드러낸 채 고개를 숙이고 아름다운 항구 서귀포와 그 앞 바다 섶섬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작은 방은 이중섭이 피난 왔을 때에 마을 반장이었던 주민이 제공한 곳이라고 한다. 겨우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버리는 이 조그만 방에서 이중섭과 그의 아내 마사코(이남덕)가 생활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방 앞에 있는 조그만 아궁이와 부엌은 궁색했던 그의 삶을 반영하는 듯하다. 서귀포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의 삶은 그나마 행복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이남덕이 그와 함께 이 작은 단칸방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해 말 부산으로 떠나게 된 그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방 안에 붙어 있는 이중섭의 자작시 '소의 말'은 후대 사람들이 그의 삶을 떠올리며 써서 붙인 것이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친다" - 이중섭의 시 <소의 말> 전문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는 이 시의 구절과 그의 작품 '소'의 서글픈 눈망울이 함께 떠오르면서 그가 걸어갔던 외롭고 슬픈 삶의 한 자락이 마치 내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하다. 부엌 천장에 홀로 쓸쓸히 걸려 있는 백열 전구만이 이중섭이 기거하던 작은 방을 지키고 있다.

▲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
ⓒ2005 강지이
▲ 이중섭의 자작시 <소의 말>
ⓒ2005 강지이
▲ 흙 천장에 걸린 쓸쓸한 백열 전구
ⓒ2005 강지이
▲ 방과 부엌이 바로 연결된 구조로 겨우 한 평짜리의 아주 작은 공간이다
ⓒ2005 강지이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보낸 일 년 남짓의 생활을 정리하고 피난민들이 운집했던 부산으로 옮겨 간다. 이후 작품 활동과 전시회 등에 전념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깊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의 가족을 이미 일본으로 보낸 후였다.

부산 생활부터 서울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치를 때까지 삼 년여 세월 동안 이중섭은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쇠약해진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들과의 오손 도손한 삶은 결국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현대 미술 작가전과 개인전 등을 개최할 만큼 왕성한 작품 활동에 몰두하다가 55년에 정신 착란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후 1956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슬픈 생을 마감한다.

이중섭이 기거하던 집을 지나면 자그마하게 서 있는 현대식 건물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이중섭 미술관이다. 1층에는 기념품과 안내소가 있고 2층에는 이중섭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3층에는 이중섭과 함께 불행한 시대를 살았던 미술가들의 작품을 '이중섭과 그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갖춰 놓았다.

▲ 아담한 이중섭 미술관의 전경
ⓒ2005 강지이
2층에 전시된 이중섭의 작품들은 그의 독특한 색채와 그림 스타일을 반영한 다양한 원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인 아이들이 놀고 있는 그림, 소 그림, 담배의 은박지에 그렸다는 은지화 등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다.

그 중 독특한 색깔의 작품 몇 개가 눈길을 끈다. 제주의 자연을 그린 유화 '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서귀포의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작품은 그가 이곳 서귀포에서 보고 느낀 것을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한 것이다. 제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그림을 보면서 그의 서귀포 사랑이 느껴져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제주에 머무르면서 음식과 거주지를 제공받은 좋은 느낌 때문인지 동네 주민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전시되어 있다. 유명한 화가가 왔다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화상 이외의 인물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 이중섭이 그려준 그림을 주민들은 고이 간직하였다가 이 미술관에 내어 놓았다.

이 미술관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미술관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시원한 서귀포 앞바다와 항구, 섶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지 않을 관람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래로 내려다 보면 이중섭이 살았다는 초가집이 조그마한 장난감처럼 보인다.

▲ 위에서 내려다 본 이중섭 거주지
ⓒ2005 강지이
▲ 후대 사람들이 이중섭을 기리며 세운 비
ⓒ2005 강지이
전시실에 진열된 일본어로 쓴 편지들은 모두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주고 받은 것들이다. '나의 사랑하는 소중하고 소중한 아고리(아고리는 일본어로 발가락이라는 뜻인데 아내가 이중섭에 대한 애칭으로 사용했다고 한다)'로 시작하는 편지들. 이 편지들을 읽다 보면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얼마나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들. 이중섭 미술관에 가면 과거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던 불행했던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느낄 수 있다. 슬프고도 외로운 삶에 몸부림쳤던 고독한 화가, 50년 전의 이중섭. 지금 이 시대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그의 삶에 비해 그나마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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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윤이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지윤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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