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인물들

인간 김수환 (古 천주교추기경)

해 야! 2009. 2. 23. 12:08


[동아일보]
■ 최근 나온 회고록 증보판 속의 ‘인간 김수환’



하느님 위대함 알고도 못 깨닫는 난 바보

오케스트라 지휘자 동경… 시인도 부러워

병원 간호수녀님들 방 들러 화투 가끔 쳐”



최근 증보판으로 나온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방송·평화신문)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가 실려 있다. 2007년 6월

일문일답식으로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연세 많은 분들이어서

 죽어야지 하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런 거짓말을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김 추기경

“매일 한다.(웃음) ‘건강하게’라는 말은 빼고 ‘오래 사십시오’라고 하는데,

장수(長壽)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고 하는 말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약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신부가 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신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신부 외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결혼해서 처자식과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굴뚝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골 오두막집,

얼마나 정겨운 풍경인가.”

 

 

―사제직 외에 동경한 것은….

“코흘리개 시절 꿈은 읍내에 점포를 차려 돈을 버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동경했다.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는

지휘자의 손끝에서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많은 어휘를 함축해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도 부럽다.”

 

 

―애창곡은….

“온 국민의 애창곡 ‘사랑해 당신을’. 예전엔 ‘저 별은 나의 별’을

자주 불렀는데 앙코르 요청을 받으면 ‘등대’를 이어 부르곤 했다.”

 

 

―잡기(雜技)는….

“장기? 신부님들이 차포(車包) 떼어주면 이길 때가 많았다.

그 덕분에 오징어를 자주 얻어먹었다. 화투는 고스톱보다 6백

(600점을 먼저 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좀 쳤다.

명동성당 구내를 산책하다 가톨릭회관에 붙어 있던 성모병원

간호수녀님들 방에 들러 가끔 쳤다.”



―십자가와 성경을 제외한 애장품은….

“성 김대건 신부님 성해 일부분, 성모상, 칫솔, 면도기, 그리고

20년 넘게 차고 있는 손목시계.”

 

―하느님께서 단 하루만 허락하신다면….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해야 하나? 아니다.

‘하느님 제가 당신을 배반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당신 사랑을 믿으며

당신 품에 들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겠다.”

 

 

―새내기 직장인이라면 연봉을 얼마나 기대하겠나.

“1000만 원 정도.”

 

―그 돈으로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고 집 장만을 할 건가.

“한 달에 80만 원 정도면 밥 먹고 전철 타고 다니고, 물도

 사 마시고…. 그래도 20만 원 정도 남을 것 같은데.”

 

 

 

―3만 원으로 여자 친구와 하루 데이트를 한다면….

“점심 먹고 영화 보고 분위기 좋은 데 가서 저녁식사 하겠다.”

―요즘 2명이 영화를 보려고 해도 1만5000원은 가져야 하는데….

“영화 표 값이 언제 그렇게 올랐나? 밥값보다 더 들겠네.

그럼 빵이나 햄버거를 사갖고 북한산에 올라가면 어떨까?”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30년 가까이 내 발이 돼준 운전사 김형태(요한) 형제.

성실하고 운전 잘하고 마음씨가 곱다.”

 

 

―추기경 김수환은 □□다.

“추기경 김수환은 바보다.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